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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 몬드리안,질서와 균형의 예술가

by efuchunsa 2021. 9. 16.

1. 몬드리안이 몬드리안이 되기까지

몬드리안은 1872년 3월 7일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주 외곽의 아메르스포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몬드리안의 아버지는 군인처럼 매우 엄격하고 성실하신 분이였는데 그 모습으로 다섯 형제자매 들을 교육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해야할 일을 해야하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규칙대로 일상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라다 보니 몬드리안의 작품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피터르코르넬리스 몬드리안이었지만 파리에서 스스로 피에트 몬드리안이라고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몬드리안은 처음에는 아버지와 삼촌에게 회화수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1892년부터 암스테르담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게 되는데 이때의 몬드리안의 작품은 자연주의적 방법으로 정물과 풍경화들로 평범한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몬드리안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이 아닌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을 고민하며 다양한 작품을 시도합니다.

이때에 자연주의, 인상주의, 점묘화, 야수파 등의 기법을 시도하며 자신만의 방향을 구축해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1911년 암스테르담에서 파블로피카소의 입체파 회화를 접하게 되고 파리로 가게 됩니다. 입체주의에서 많은 자극을 받아 '나무'의 연작을 통해 추상화로의 노력을 시작하게 됩니다. 1912년 검은 선들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고 색채 보다는 드로잉에 포커스를 맞추어 특징적인 스타일을 만들게 됩니다. 1914년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귀국하여 1917년 네덜란드의 추상파 화가들과 '데스테일'을 결성하여 추상운동을 전개합니다. 신조형주의를 창조하여 본인만의 표현을 이름짓고 책도 출간합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않는 단순하고 규칙적인 직선과 직각, 삼원색, 무채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오늘날 전해지는 작품의 기본 바탕을 만들게 됩니다.

 

1919년 다시 파리로 돌아가 1920년 초 신조형주의 양식에 맞추어 작업실을 개조하고 이후의 작업은 수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단순화하며 가장 기본적인 조형의 요소만으로 작업을 완성하였습니다. 1921년 구성이라는 연작을 발표하는데 이런 형태의 작업을 계속 하다 1930년 이후 급진적인 추상의 평태를 보여 줍니다.

1938년 2차세계대전의 발발할 양상을 보이자 영국으로 이주하고 1940년 뉴욕에서 몬드리안의 대표작 뉴욕시티의 연작을 선보이게 되는데 이때 발표한 작품이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입니다. 그는 1944년 2월 1일 72살에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마지막 작품이 '승리부기우기'인데 미완성으로 남아있습니다.

 

2. 몬드리안의 작품은 단순하지만 쉽지 않다

몬드리안의 작품은 너무 단순해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을 분석해 보면 수직선은 남성성으로 수평선은 여성성으로 보고 수직선은 나무에서 영감을 얻었고 수평선은 바다에서 찾았습니다. 모든것을 가장 단순화하여 순수한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형태의 모숩을 찾고 이 도형 만으로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1928년 구성작을 보면 수직선과 수평선을 교차시키며 가장 기본의 채색으로 작품을 완성시켰습니다. 또한 수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수평선과 수직선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구성으로 비슷하지만 다른 작품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2차세계대전으로 불안함을 느끼던 몬드리안은 뉴욕으로 건너가 여러 예술과들과 사귀며 영향을 받았고 째즈 음악에 빠지게 되면서 그의 작품은 조금더 발전하게 됩니다. 검정색선과 흰색면의 교차에 채색한 것에서 벗어나 컬러선이 생기고 이중선이 생기며 복잡한 선의 망조직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뉴욕에서의 영향이 충분히 반영된 뉴욕시티 연작을 선보이게 되는데 이때 발표한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검은 수직수평선 대신 노란ㄴ색선과 작은 색 면들이 리듬감있게 배치되고 빨간색과 회색, 파란색의 정사각형을 포인트로 배치시켜 역동성까지 표현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몬드리안의 추상화 가운데 최고라고 일컬어 집니다.

 

3. 몬드리안의 이름을 딴 새로운 작품들

몬드리안의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작품들을 쏟아냅니다.

1965년 파리 컬렉션에서 y.m 생로랑이 발표한 몬드리안룩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의상에 접목하여 그의 기하학적 무늬를 살려 소매가 없고 라운드 넥라인으로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를 제작하였습니다.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시키고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흰색을 사용하여 의상을 만들어 냈으며 이후 1980년 다시 몬드리안 수트를 발표합니다. 몬드리안 니트라는 단어 또한 몬드리안의 화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제작한 니트소재의 의상으로 소니아리키엘의 작품에서 볼 수 있으며 검정과 흰색의 바탕에 색감이 높은 색상을 더하여 기하학 무늬를 배치한 옷입니다. 알렉산더 칼더라는 미국의 조각가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고 추상조각으로 전환하여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조각을 제작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몬드리안의 패턴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호텔이나 인테리어에서도 몬드리안의 작품을 기반으로 하여 디자인을 하고 다양한 상품들에서도 몬드리안의 작품으로 상품을 디자인 하기도 합니다.

몬드리안의 철학이 그시절의 미술을 넘어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고 그것이 오늘날의 작품까지 이르러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몬드리안의 작품이 단순한 사각형과 선의 의미를 넘어 그 속에서도 영감을 얻는 깊은 어떤 것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