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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그림에 있어서는 못할것이 없었던 천재

by efuchunsa 2021. 9. 15.

1. 파블로 피카소, 그는 어떻게 자랐을까

1881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가난한 미술학교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때 누구나 울음을 터뜨리지만 피카소는 그렇지 않아 걱정을 하게 하기도 합니다.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었는데 그런 그를 위해 바르셀로나로 이사하며 본격적인 미술공부가 시작됩니다. 1896년 마드리드 왕립아카데미 상급반에 입학하였고 열네살의 어린 나이에 '첫영성체'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첫 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1901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힘들고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청색시대로 일컬어 지는 작품들이 나타납니다. 이때 대표적 작품이 '비극' 입니다. 1904년에는 피카소가 파리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아방가르드 미술가들과 모이며 죽을때까지 프랑스에서 살게 됩니다. 이후 색감이 붉은 빛이 돌게 되며 장미시대로 들어서는데 한층 밝아지고 감성적인 작품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많이 그려냅니다. 서커스에도 흥미가 있어 '공을 타는소녀''아클퀴앵의 가족'등 섬세한 선으로 작품을 그려냅니다. 이때 피카소의 작품으로 유명한 '아비뇽의 여인들' 이라는 작품이 나오게 되는데 이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인디언과 흑인들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앞,뒤,옆모습을 한꺼번에 그려넣는 작품입니다. 새로운 작품을 본 사람들은 비난하게 되지만 이때부터 입체주의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를 거쳐 1912년 종합적 입체주의시대로의 그의 그림이 발전하게 되고 신고전주의를 거쳐 다양한 영역을 발전시키는 활동을 합니다. 이때는 이미 유명한 작가로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활동범위도 점점 더 넓혀져 갔습니다. 1934년에는 에스파냐를 여행하며 투우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고 1936년 에스파냐 내란이 일어날 당시에는 인민전선을 지지하며 전쟁의 비극을 그려낸 '게르니카'를 완성합니다. 2차세계대전 때에는 에스파냐에서 지냈으나 파리로 돌아와 1944년 종전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하며 이시기 이후로 석판화와 도기의 제작에 열중하기도 하며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두번 결혼을 하며 그 사이에 세명의 여자로부터 네명의 자식이 있었으며 고령의 나이에도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다가 1973년 4월 8일 프랑스 남부 무쟁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2. 큐비즘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큐비즘은 피카소에 의해서 창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20세기 중요한 예술운동주의 하나입니다.

건축,조각,공예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었으며 국제적으로 퍼져서 일어난 운동으로 인상파에서 시작하여 야수파운동과 전후해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 중심에 '아비뇽의 여인들' 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것은 큐비즘을 대표하는 최초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사실을 바탕으로 같게 비슷하게 그리는 화풍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면 큐비즘은 형태를 그대로 그리지 않습니다. 1908-1909년 사이 피카소와 브라크의 예술은 세잔의 예술에서 영감을 얻어 대상을 기본적인 형태와 양으로 나타내려고 하는데 이것을 좀더 세분화하여 대상의 형태를 점차 섬세한 면분할을 시도하게 됩니다. 큐비즘은 점차 종합적단계로 옮겨가며 그림의 이차원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현실성을 살려 형태와 양을 표현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삼차원의 어떠한 형태를 이차원의 형태로 만들며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노력이 목적입니다.

대상을 원통이나 구, 원뿔, 기둥과 같은 형태로 분해하고 조합하고 재구성하여 형태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은 앞으로 나오게 될 추상미술의 모태가 됩니다.

큐비즘은 세계 1차대전으로 인해 좌절되었으나 20세기 미술에는 아주 큰 영향을 끼칩니다. 

 

3. 슬픔과 아픔을 담은 '게르니카' 세기의 걸작

고흐와는 달리 피카소의 그림은 생전에도 잘 팔려서 성공한 화가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에서 콘도르 군단의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민간인 1500여명이 죽은 사건으로 전쟁의 잔인하고 참혹한 장면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1936년 내전이 발생했을 당시 피카소는 프랑스에 살고 있었는데 독일의 비행대가 스페인 바스크지방의 소도시인 게르니카를 폭격하는 것을 듣고 이 참사를 주제로 선정하여 파리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을 위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5월1일 첫 스케치를 내 놓으며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가로가 7.8m이고 세로가 3.5m되는 거대한 캔버스에 무채색과 단색으로 슬픔을 부각시켰으며 피카소 특유의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작품은 2개월동안 작업하였다고 합니다. 전쟁의 무섭고 사실적인 그림은 아니지만 그림을 살펴보면  불이난 집, 황소의 머리, 울부짖는 말, 상처입은 말, 분해된 사람, 아이를 안고 있는 울부짓는 엄마의 모습들을 매개로 예술을 도구로 삼아 피카소는 평화와 자유를 밟아버린 사람들에게 피카소가 내는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뉴욕의 현대 미술관에 보관되었으나 스페인이 민주주의가 되었을때 반환해 달라는 피카소의 유지에 따라 1981년 스페인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