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중섭, 그는 촉망받는 미술가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3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습니다. 1923년 평양 외가로 옮겨서 종로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1930년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원래는 평양고등보통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실패하여 오산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때 도화 및 영어담당교사 임용련을 만나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임용련은 파리에서 활동했던 유학자인데 이중섭에게 습작을 많이 가르쳤다고 합니다. 1936년 그의 나이 21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사립 제국미술대학에 입학하고 곧 분카학원 미술과로 옮겨 야수파 그림의 영향을 받아 이중섭의 조형세계가 시작됩니다.
이때 야마모토마사코 라는 일본 여성을 만나 사귀게 됩니다. 1940년 제4회 자유미술가협회전 공모전에서 '소의머리','서있는 소','누운여자', '작품1', '작품2' 를 응모하여 입선하게 됩니다. 1943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 열리는 공모전에서 태양상을 수상합니다. 1945년 아마모토마사코와 원산에서 결혼하고 최재덕과 함께 미도파 백화점 벽화를 그리기도 합니다.
1946년 조선조형예술동맹 에 가입했고 이 시기에 아들이 태어났으나 디프테리아로 사망하게 됩니다. 충격을 받은 이중섭은 '하얀별을 안고 하늘을 나는 어린이'라는 작품을 출품합니다.
1948년 아들 태현이 태어나고 1949년 아들 태성이 태어나며 송도원으로 이사를 갑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하여 부산으로 피난을 갑니다. 1951년에는 제주도 서귀포에 안착하여 '서귀포의 환상','섶섬이보이는 풍경'등을 그립니다. 하지만 생활고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고 1952년 6월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으로 갑니다. 이때 이중섭은 친구들의 주선으로 종군화가가 되고 은지화를 그립니다. 홀로남은 이중섭은 부산, 통영, 진주, 대구등으로 다니다가 1953년 선원증을 마련해주어 동경으로 가서 일주일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옵니다.
1954년 유강열, 장윤성, 전혁림과 4인전을 개최하고 진주에서도 박생광의 도움으로 개인전을 가집니다. 이때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됩니다. 1955년에는 미도파백화점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나 은지화가 춘화라고 하여 강제 철거를 당하게 되고 계속 가족을 그리워하다 6월 24일 성가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습니다. 12월경 정릉에서 지내다가 1956년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9월 6일 사망합니다. 무연고자로 알려져서 사흘간 시체실에 있다가 친구에 의하여 공동묘지에 안장됩니다.
2. 다양한 주제와 강렬한 붓터치의 작품들
그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가장 유명한 소부터 닭이나 물고기, 게, 꽃, 어린이 그리고 가족들의 그리움으로 그린 편지들이 있습니다. 총 300점 정도로 알려진 이중섭의 작품은 '현해탄' 이라는 작품은 일본에 있는 부인과 아들을 빨리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며 그리움이 가득담긴 작품입니다. 이번에 이건희 컬렉션으로 제주로 가게된 '섶섬이 보이는 풍경' 또한 제주도에서 그린 작품중 유명하게 남겨진 작품이며 서귀포로 피난갔을때 그려진 그림입니다. 하지만 가장 이중섭을 대표하는 작품의 주제는 소가 아닐까 합니다. 소는 연작으로 그려졌는데 형태가 아주 강렬한 선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색과 붓질 또한 과감하게 표현 되었습니다. 소를 아주 유심히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몰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열심히 관찰을 했고 그 결과 소의 다양한 동작과 형태를 작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중섭의 작품으로는 은지에 그림을 그린 은지화가 았습니다. 너무 생활이 힘들었던 그는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배갑속의 은색 종이를 사용하게 되는데 물감이나 연필, 철, 못 같은 도구로 은지에 새겨넣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편지와 그림들은 그의 마음이 절실하고 절절하게 스며들어있습니다.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편지 양쪽에 그려진 그림이나 '길떠나는 가족'이라는 작품은 두아들과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여실히 잘 보여 집니다.
3. 사랑하는 가족들을 그리며 그린 편지, 그림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과 그림들은 정말 다정안 아빠가 아닐 수 없다. 큰아이가 4살정도까지 함께 했는데 바다에 앉아서 게를 잡던 장면을 그리거나 그 게한테 너무 미안에서 게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습니다.
감기에 걸린 아들에게 보낸 글에는 두 아들이 복숭아를 가지고 놀고 있는 그림을 그려 보내고, 아빠가 엄마와 태현이와 태성이를 소 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끌며 따뜻한 남쪽나라고 가는 '길떠나는가족'이라는 그림을 그려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아빠가 가족 4명이 모두 모여 안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과 함께 있는 편지도 있습니다. 아내에게 그려넣은 판잣집 화실이 있는데 누워있는 이중섭과 벽에 여기저기 붙어있는 그림들이 이중섭의 일상을 너무도 잘 보여줍니다.
야마모토마사코에게 글자없이 그림만 그려보낸 엽서화만 90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는 이 엽서화를 혼자만 간직하다가 세상에 알리게 되는데 그녀는 공개했을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사무치도록 남편이 그리울 때면 남편이 남긴 엽서 그림과 작품들을 어루만지며 위로받곤 했습니다."
"남에게 공개할 수 없었던 남편의 분신을 공개하는것은 이제는 나만이 간직하기에는 그가 너무 훌륭하기에 그렇습니다."
라고 하며 그 엽서를 세상에 공개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1940년대의 이중섭의 그림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