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앤디워홀, 상업미술가로 눈에 띄다
1928년 8월6일 슬로바키아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워낙 몸이 약해 아프기가 일쑤였습니다. 8세 때는 류마티스성 열로 인해 학교에도 거의 가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과 친해지기 시작하고 어머니의 전적인 지원으로 앤디워홀은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카네기 멜런대학에서 미술학사를 취득하고 상업디자이너로서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앤디워홀은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후 자기돈으로 책을 출판합니다. 선물용으로 만들었으며 제대로 제본도 되지않아 낱장으로 남아있으며 1954년 '샘이란 고양이 25마리와 한마리 파란고양이'라는 책은 친구의 본문내용 위에 워홀이 직접 색칠했다고 합니다. 이때는 책의 삽화를 그리고 무대 디자인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1956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게 되고 1960년대 초 그는 목표를 바꾸어 실험적인 회화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페루스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캠벨 수프 깡통을 그린 37점의 그림을 전시하였습니다. 현대생활에서 흔히 보는 소재를 등장시켜 예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작품을 만들었으며 1960년대 팝아트를 이끌며 실크스크린으로 대랑생산을 해내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음악에도 열정을 보이는데 1967년 뉴욕에서 대뷔한 록밴드를 후원하며 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이 록밴드의 앨범커버를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이 외에도 많은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실크스크린과 페인팅작업의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의 드로잉 작업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작업실을 팩토리라고 부르며 작업실이 아닌 이름을 명명하기도 합니다. 1969년 인터뷰라는 잡지를 창간하게 되는데 이유는 뉴욕필름페스티벌의 미디어 출입증을 얻기 위함이었지만 앤디워홀은 직접 유명인을 인터뷰하며 그들과 교류하려 했던 워홀의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는 실험정신이 담긴 아주 긴 분량의 영화도 제작하였습니다. 1968년 페미니스트 작가인 발레리 솔라니스에게 저격을 당해 중상을 입게 되는데 두발의 총탄이 워홀의 폐, 위, 간, 목을 간통해 응급수술을 하고 두달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1985년 출판된 '아메리카'는 미국에서의 삶을 보여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수술후 담석증이 생기고 또 수술한 뒤 심장마비로 1987년 2월 22일 눈을 감습니다. 그는 은색가발과 선글라스를낀 모습으로 무덤속에 묻혔다고 전해집니다.
2. 팝아트의 거장, 팝아트가 무엇일까
팝아트는 미술의 한 장르로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popular art의 줄임말로 그 시작은 매스미디어에 주목한 리차드 해밀튼 같은 영국 작가들이었지만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작업을 했던 것은 뉴욕의 팝 아티스트들입니다. 1956년 '이것이내일이다' 라는 영국의 전시에서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작품이 영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팝아트 작품입니다. 영국에서는 사회 비판적인 의도가 담긴 팝아트가 시작되었으나 미국 사회환경 속에서 대중 문화적 이미지를 사용하며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게 됩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자스퍼 존스, 라우센버그, 리히텐슈타인, 앤디워홀, 올덴버그, 로젠퀴스트, 웨세르만, 시걸 등이 있습니다. 1960년에 큰 영향을 이루었으며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 까지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들중 앤디워홀은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며 마릴린먼로, 엘비스프레슬리등 유명한 인물들과 코카콜라나 캔과 같은 주제를 반복묘사하고 색채를 더해 작품을 발표합니다.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의 영역을 더 확대하며 시대흐름에 힘입어 급속도로 인기를 얻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고급스러운 문화와 저급한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장르로 부각된 것이 바로 팝아트 입니다.
3. 앤디워홀의 작품, 한번쯤은 보았을 그것
앤디워홀의 작품은 대량생산이 특징인 문화를 이용하여 기계를 이용해 작업하는 실크스크린을 사용하였습니다.
조수들도 작업에 참여시킴으로 의식적으로 예술가만의 영역을 파괴하고 작업을 하였으며 작품 또한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생산하였습니다. 1971년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으로 코카콜라가 중국에 들어오게 되고 이것을 담은 '코카콜라병'의 작품이나 중국의 '마오쩌둥'을 작업하며 사회 현상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비행기 추락과 인종갈등, 권력의 남용을 주제로 한 정치적인 작품도 중요하게 여겨지며, 전기의자 같은 작품에 담긴 깊은 의미도 생각해 보게 하는 시선을 가지게 합니다. 비틀즈나 마이클잭슨 같은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는 대담하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여 제작되기도 하고 '소','꽃'과 같은 작품은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시선을 끌게 됩니다.
마릴린먼로가 사망 한 후 만들어진 마릴린 먼로의 작품도 앤디워홀의 의식이 많이 반영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접하는 것을 그리는데 '캠벨수프캔' 이 바로 그것이며 평범한 것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것을 보여줍니다.
브릴로박스 라는 작품은 세탁비누의 브릴로박스와 같은 나무규격의 상자로 똑같이 만들었는데 워홀의 작품들은 이렇게 실제로 존재하지만 실제가 아닌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앤디워홀은 기능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그것이 실제라고 말하며 존재 자체에게 의미를 두었습니다.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이 왜 그린건지 고민하지 않고 '모든것을 알고 싶다면 표면만을 보면 좋다'고 말했던 앤디워홀, 그는 진정한 가치를 지닌 작품을 생산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