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켈란젤로는 어떻게 살았을까
미켈란젤로는 1457년 3월 6일 피렌체에서 가까운 이탈리아 카센티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행정관으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그가 6살에 세상을 떠나 미켈란젤로는 어느 석공의 아내에게 맡겨졌다고 합니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났기에 아버지는 집안을 일으키고 싶어서 반대하셨지만 틈만나면 그림을 그렸고 13살 되던해 피렌체에서 유명한 화가 기를란다요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의 싫증을 내고 조각의 길로 들어서서 조각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예술가를 후원하던 메디치가문에 눈에 띄게 되며 조각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첫 작품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라는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지시로 작업을 계속 진행했는데 율리우스 2세와의 미묘한 관계로 벽화를 그리게 됩니다.
브라만테가 교황의 총애를 받는 미켈란젤로를 곤경에 처하게 할 속셈으로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추천하게 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조각가임에 자부심을 가지며 '미술에서 가장 으뜸은 회화이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맞서 '조각이야말로 미술의 꽃이다'로 주장해 왔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1508년 5월 10일 작업이 시작되고 자꾸 늦어지는 작업과 어려운 생계로 힘들게 작업을 진행하다 1512년 11월 1일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공개됩니다. 이 작품이 바로 천지창조이다. 물감을 반죽하는 정도의 일만 조수에게 시키고 모든 작업을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해냈다고 합니다. 이후 1533년 메디치 묘의 작업을 하고 있던 미켈란젤로에게 교황 클레멘스7세가 의뢰하고 파울루스 3세가 다시 명령을 내려 최후의 심판 작업도 하게 됩니다. 이것은 1541년 완성되는데 이때 미켈란젤로는 아주 힘들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도 자주 썼으며 1546년 이후에는 시집출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 조각은 '론다니니피에타'인데 1547년 작업을 시작하여 완성하지 못하였으며, 1547년 성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감독하는 일도 맡아 돔을 디자인하였지만 이것역시 완성을 보지 못하고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 그의 작품들 속에 보이는 그의 천재성
'천지창조'를 보면 아담의 창조, 이브의창조, 인간의 타락, 노아의제사, 대홍수 등 아홉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패하면 다 뜯어내고 다시그리는 일을 반복해서 그렸으며 사람수만 3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최후의 심판' 은 몸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자세를 그림으로 그려내며 이후의 화가들이나 조각가들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참고하여 작업을 할 수 있었기도 했다고 합니다.
'피에타'라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불어주세요 라는 뜻의 작품은 예수그리스도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만들어 낸 작품이며 이 작품에서 마리아를 고대 그리스 조각처럼 더 아름답고 젊게 형상화하고 지나치게 과격하고 슬퍼하는 식의 감정표현을 자제하기도 했습니다. 높이가 174cm인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만들고 나서 자신의 작품의 반응을 알고자 사람들 틈으로 가서 반응을 살피던 중 어떤 사람이 이 작품은 나이가 지긋한 노장의 작품일거야 라는 말에 분노하여 마리아의 가슴의 띠에 피렌체 출신의 미켈란젤로 라고 새겨 넣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피에타의 성공 이후 '다비드' 조각상을 제작하는데 이 작업은 4m가 넘는 거대한 대리석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갔던 대리석을 조각하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이 미켈란젤로에게 가서 거대한 다비드 상이 되었습니다.
다비드상은 높이가 434cm이며 거인 골리앗을 돌멩이 하나로 무찌른 다윗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다비드의 몸매는 해부학적으로 완벽할 뿐 아니라 남성의 이상적인 몸매를 내보이고 있으며 피렌체의 미술관에 원작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3. 조각을 너무나도 사랑한 미켈란젤로
돌속에 갇혀있는 형상을 드러나도록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는 것이 조각이라고 말하는 미켈란젤로는 시체해부를 통해 사람의 몸을 이해하고 사람의 몸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완벽한 조각 앞에서 우리는 감탄하고 또 감탄하지만 그가 하고 싶지 않았던 벽화에서 까지도 멋진 실력을 보여주었던 그는 정말 천재라고 불릴 만한 예술가입니다. 조각가라고 주장한 사람이지만 어쩔수 없이 붓을 들고 고개를 쳐들고, 혹은 누워서 천장에 그림을 그리던 미켈란젤로를 상상해 보면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는 잠도 몇시간 자지 않고 약간의 빵과 포도주로 끼니를 때우며 작업을 진행하고, 때로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장화를 신은 채 잠이 들어 장화에서 발이 빠지지 않아 장화를 찢어야만 했던 일들을 들을때면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예술을 향한 그 마음이 얼마나 넓고 컸을지 짐작이 됩니다. 90세의 나이로 세장을 뜰때 까지도 작업을 하고, 병상에서 일어나 작업을 하다가 쓰러지고 실려오기를 반복하며 몰두한 작업들은 오늘날에 왜 사람들이 그 작품을 보러 가는지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통의 삶속에서 예술이외에는 어떤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미켈란젤로의 삶은 지금 남아서 보이는 수많은 그의 작품들로 지금과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기 자신이 조각가로 불리우길 원했던 그는 화가이자 건축가이며 조각가이며 르네상스의 천재라고 생각합니다.